본문 바로가기

전남여행

석주관 칠의사 전적지_칠의사 묘 사적 제106호, 남도 여행

메뉴의 (시작하기)를 누르시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왜적들이 침입했을 때 임금님은 도망갔고 남은 백성들은 싸우다가 죽었지요.

'12월 23일을 천왕탄신일'이라고 적힌 일장기까지 넣은 달력을 만든 경상남도를 보면 

지금 우리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칠 의사 분들 지하에서 통곡하실 듯합니다.


지리산이 흐르고

섬진강이 흐르는

석주관에서

아픈 역사를 만나다.

 

https://youtu.be/OXH4NzL5Xy4

사적지 명승지 http://work-study.tistory.com/27


섬진강의 그림 속을 달리다가 석주관(石柱關) 칠의사(七義士) 사적지(史蹟地)를 만난다.

석주관은 지금의 구례군 토지면 송정리에 위치한 곳으로 경상도 하동과 전라도 구례를 연결하는 지점이다.

이곳은 마한과 진한의 경계, 백제와 신라의 경계로 요충지였다.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이 때 왜군이 석주관으로 쳐들어오자 구례 현감 이원춘은 소수 병력으로 방어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남원성으로 퇴각하여 그곳에서 싸우다 전사했다.

이때 구례 유생 왕득인이 의병을 모집하여 대항하다가 숨졌고, 왜군의 약탈이 계속되자 왕의성, 이정익 한호성, 양응록, 고정철, 오종 등이 화엄사 승병과 하께 혈전을 벌이다 대부분 전사했다. 

순조 4년(1804)년 나라에서 왕득인을 포함한 7명의 의사와 구례 현감의 충절을 기려 각각 관직을 내렸고, 서쪽 산기슭에 무덤을 모셨다. 이곳이 석추관 칠의사 묘다.


길옆 비석에 칠의사순절사적비(七義士殉節史蹟碑) 팻말이 앞에 서 있고 위쪽으로 올라가면 칠 의사의 모습이 양각된 비석 뒤에 낮은 담장 안에 8개의 무덤이 있었다.

왠지 모를 쓸쓸함이 밀려오는 것은 무엇일까?








석주관 칠의사 묘, 사적 제106호